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Tripitaka Koreana 트리피타카 코레아나[*])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있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아내고자 1236년(고종 23년) 강화군에서 조판에 착수하여 15년이 지난 1251년(고종 38년)까지 총 16년에 걸쳐 완성한 고려의 대장경이다. 1962년 12월 20일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32호 해인사대장경판(海印寺大藏經板)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2007년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매주 주말 일반에게 공개(매주 토, 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 2회/ 회당 팀방 참가인원은 10~20명으로 제한/ 초등학생 미만 유아는 관람 신청 불가)된다. 해인사 총무국장 진각 스님은 팔만대장경은 불교행사나 법회때 불자 등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해 왔으나 일반에게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팔만대장경은 다 읽는데 20년 걸린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외침(外侵, 외세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자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을 추진했다.[1]

제1차는 거란의 침입으로 곤경에 직면했을 때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대구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도감(都監)을 두고, 《대반야경(大般若經)》·《화엄경(華嚴經)》·《금광명경(金光明經)》·《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6,000여 권을 조조(彫造)하였다.[2] 현종 때 시작하여 문종 때 완성된 이 초판 고본(古本) 대장경은 고종 19년(1232)의 몽골 침입 때 불타고, 일부가 일본에 전해진다.[2]

그 후 대각국사 의천이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송에서 가져온 불경과 요(遼) · 일본에서 수집한 불경의 총목록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차례로 만들었다.[2] 이것이 이른바 속대장경(續大藏經)으로 1,010부(部) 4,740여 권에 달하였으나, 몽골의 병화로 거의 없어지고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2]

그 후 강화도에서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대대적인 조판 사업이 진행되었다.[3] 고종 23년(1236) 강화도에 장경도감(藏經都監)을 설치하여 사업에 착수, 고종 38년(1251) 총 81,137매(枚)의 대장경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으로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3] 대장경의 조판으로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 기술에 큰 공헌을 하였다.[3] 현재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조선 시대에 다시 새긴 것(보유판)과 일제 강점기 때 다시 새긴 것까지 합하여 총 81,352판(板)이나 된다.[4]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몽골과의 항쟁 > 고려대장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가 나 다 라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몽골과의 항쟁 > 고려대장경 > 제1차 대장경간행,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가 나 다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 후기의 사회와 문화 > 몽골과의 항쟁 > 팔만대장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고려대장경연구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각종 자료마다 경판의 총매수, 경종류, 권수가 조금씩 다른 이유는 “보유판(補遺板) 포함여부”,“중복판 포함여부” 등 때문에 발생한 차이이다.
Photographies by:
Statistics: Position
898
Statistics: Rank
121260

댓글 달기

보안 문자
보안
872196345Click/tap this sequence: 3331
이 질문은 당신이 사람인지 로봇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것입니다.

Google street view

Where can you sleep near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

Booking.com
539.516 visits in total, 9.234 Points of interest, 405 목적지, 3 visit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