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xt of 방콕

방콕(프랑스어: Bangkok, 듣기 )), 통칭 끄룽텝 마하나콘(태국어: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로마자: Krung Thep Maha Nakorn, [kɹʊ̄ːŋ.tʰɪ̌ːp̚.mhɐ̂ː.nɐ́.kʰɔ̄ːn] 듣기 ), 더 줄여서 끄룽텝(태국어: กรุงเทพ, [kɹʊ̄ːŋ.tʰɪ̌ːp̚] 듣기 )은 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타이만으로 흘러드는 짜오프라야 강 동쪽, 북위 13°45′, 동경 100°31′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1782년 라마 1세가 이곳을 세운 이래 수도였다. 태국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부와 동북부 그리고 남부를 잇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다. 또한 태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꼴불견 대도시의 전형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도시이기도 하다. :68 특히 고층 빌딩 건설이 아주 활발하다. 방콕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약 828만925명을 기...더 보기

방콕(프랑스어: Bangkok, 듣기 )), 통칭 끄룽텝 마하나콘(태국어: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로마자: Krung Thep Maha Nakorn, [kɹʊ̄ːŋ.tʰɪ̌ːp̚.mhɐ̂ː.nɐ́.kʰɔ̄ːn] 듣기 ), 더 줄여서 끄룽텝(태국어: กรุงเทพ, [kɹʊ̄ːŋ.tʰɪ̌ːp̚] 듣기 )은 태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타이만으로 흘러드는 짜오프라야 강 동쪽, 북위 13°45′, 동경 100°31′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1782년 라마 1세가 이곳을 세운 이래 수도였다. 태국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부와 동북부 그리고 남부를 잇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이다. 또한 태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꼴불견 대도시의 전형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도시이기도 하다. :68 특히 고층 빌딩 건설이 아주 활발하다. 방콕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약 828만925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기상 기구는 방콕을 세계에서 가장 더운 도시라고 부른 바 있다. 방콕은 약 3천여 년간 독립을 지속해 온 독립왕국으로서의 태국의 문화유적과 풍물 등 각종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며 동서양을 잇는 아시아의 관문이기도 하다. 밤의 유흥가, 시장, 상점과 식당, 웅장한 사원, 박물관, 궁전과 공원이 즐비하다. :68

방콕은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로 세계 50여개의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다. 특히 수완나품 국제공항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 드는 여행객으로 연일 붐빈다. 방콕은 고풍스러운 전통과 현대의 멋을 지닌 태국인 특유의 미소와 여유로 여러 나라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렸던 방콕의 주민들은 싱가포르와 홍콩과 맞먹을 지역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고속 성장의 부작용으로 중대한 기반 시설 문제, 사회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다. 수질이 매우 악화되었고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가는 교통혼잡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방콕은 주변의 여섯 개의 주(짱왓), 사뭇쁘라깐 주, 사뭇사콘 주, 차층사우 주, 빠툼타니 주, 논타부리 주, 나콘빠톰 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More about 방콕

Population, Area & Driving side
  • Population 5676648
  • 영역 1568
기록
  •  
    왓 프라깨오
     
    수쿰윗 대로의 경관
     
    왓 프라깨오
     
    수쿰윗 대로의 경관
     
    중심부

    방콕의 역사는 1782년, 라마 1세가 딱신 대왕을 배반하고 살해한 후 현재의 톤부리에서 짜오프라야 강 연안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짜오프라야 강 주변까지 세력을 확장하려던 버마 꼰바웅 왕조의 침입이 쉬웠기 때문에 라마 1세는 톤부리에서 짜오프라야 강 연안으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방콕의 건설은 6월 10일 오전 6시 45분에 락쿰안(시의 기둥)이 지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건설은 짜오프라야 탐마티콘 (분롯)이 맡았으며, 3년 후에 건설을 마쳤다. 아유타야와 같이 왕궁이나 관련 시설을 포함한 토지의 주위에는 운하가 파져서 라따나꼬신 섬으로 불리는 인공의 섬이 만들어졌다. 당시 이 라따나꼬신 왕국 안에는 왕에게 허용된 사람만 살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라따나꼬신 섬에 거주하고 있던 것은 왕족과 《왕실 화인》이라고 불린 차오저우계의 화교였다.

    건국 당시는 라따나꼬신 섬만이 방콕의 중심으로서 기능하고 있었지만, 태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시가지는 동쪽으로 확장되었다. 또 쭐랄롱꼰(라마 5세)의 시대에는 라따나꼬신 섬의 수용 인구가 한계에 다달아 왕궁 만으로 충분히 수용할 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북쪽에 두싯 궁전군을 건설하였다. 쭐랄롱꼰의 아들은 더 북쪽으로 반쿤프롬 궁전, 수코타이탐마티웻 궁전 등을 건설하였다.

    또, 경제의 중심도 짜끄리 왕조 초기에는 당시 라따나꼬신 섬에서 운하를 사이에 두어 동쪽의 야오와랏 대로에 있었지만, 20세기 후반에 실롬 대로로 중심이 옮겨졌다. 그 때문에 라따나꼬신 섬 주변은 현재, 구시가지라고 부른다.

    방콕 건설에서 라마 5세 시대까지 방콕은 짜끄리 왕조의 왕조에 의한 직할지였다. 그러나 라마 5세의 이후 시가지가 확대를 시작했기 때문에, 짜끄리 개혁에 의해서, 방콕은 기내성이라고 하는 기관의 관할로 이전되었다.

    1972년에는 무분별한 확대가 진행되어 방콕의 행정 기관은 논타부리 주, 사뭇쁘라깐 주, 빠툼타니 주를 방콕에서 분리하였고, 한편으로 1975년에는 방콕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던 톤부리 주를 방콕으로 편입하였다. 그 사이에도 방콕의 시가지의 확대가 진행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는 태국 내의 투자가 활발해져서, 태국의 경제 중심지인 방콕도 행정도시에서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운하들이 매워져 자동차 도로가 되었고 실롬 대로와 수쿰빗을 중심으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섰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개발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태국의 경제가 곧 회복됨에 따라 방콕의 발전은 계속됐다. 경제발전으로 자동차가 늘어남에 따라 나타난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방콕 스카이트레인이 1999년 개통했다.

    방콕은 교육 수준이 높아져 의식이 자유로운 시민이 증가했기 때문에 내무성의 직접 통치가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1985년에 《방콕 수도부 행정 조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주민이 뽑은 시장에 의한 자치를 하고 있다. 1992년 민주화 시위는 군부에 의해 유혈 진압 당했지만 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쿠데타 이후 탁신 친나왓 총리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으로 방콕에서 여러 차례 시위가 일어나 공항이나 정부 청사가 시위대에 점령당하는 등 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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